타인과 함께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4년 전쯤 직장 동료와 룸메이트가 됐었다. 사회생활 하며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고들 하는데, 룸메이트였던 언니는 외로운 타지 생활에 큰 위안이 되는 존재였었다. 어울리다 보면 서로의 집에서 주말을 보낼 때도 있었고 성격도 잘 맞아서 같이 사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큰 오산이었다. 집안일 문제 등 많은 갈등이 있었고 결국 6개월 뒤 각자 살기로 했다.
2023년 5월. 퇴사하고 5개월이 지났다. 제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오며 가장 걱정했던 건 6년 만에 다시 시작된 부모님과의 동거다. 혼자의 생활에 익숙한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과거 대학교를 막 졸업했던 나는 부모님의 간섭에 많이 답답해했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6년 만에 다시 돌아온 룸메이트 부부는 내 사회생활을 많이 이해해줬다. 대학교를 막 졸업한 나와 30대가 된 나를 달리 대했다. 여전히 귀가 시간을 점검했긴 하지만.
적응해야 하는 건 오히려 나였다. 긴 시간 안 쓰는 가구들이 들어서 창고화되었던 내 방은 점차 내 취향의 가구들이 들어섰다. 이제는 내 공간이라고 말함 직하다. 그리고 부모님과 같이 살며 갖게 된 여러 가지 변화들.
홈쇼핑, 인터넷 결제가 많아졌다. 삼시세끼 챙겨 먹는다. 혈색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위가 늘었다.
지금의 부모님은 과거의 내가 원했던 모습이다. 여유 있고, 나와 함께 하길 원한다. 과거의 내가 바랐듯 많은 시간을 나와 함께 보내려 노력한다. 지금의 내가 바라는 모습은 아니지만, 아무튼 6년이 지난 부모님은 달라져 있었다.
얼마 전 장을 볼 때 일이다. 우리 딸이 좋아하니까, 다른 상자보다 2천 원이 더 비싼 오이를 고르는 엄마의 모습은 아주 낯설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하는 모습. 익숙한 그 모습은 언제 없어졌던 걸까? 내 기억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 어색하다.
2천 원이 더 비싼 오이를 손질하며 엄마는 아빠를 불렀다. 여보, 이거 밭에서 갓 딴 냄새가 나지? 긍정하는 아빠의 얼굴이 낯설다. 새로운 룸메이트와 함께하며 나는 밭에서 갓 딴 오이의 향을 배운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주는 이 룸메이트와 함께 할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낯설지만 사랑스러운 모습을 눈에 잘 담아둬야겠다.